꿈꾸는 곰팅이145 동경 바빌론 (CLAMP, 대원씨아이) - 당신은 이 도시를 싫어하십니까?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짐을 싼 후, 뜯지 않은 박스 저 밑바닥에서 고요히 잠자고 있던 녀석이었다. 클램프라는 작기집단의 처녀작인 부터해서 꽤 많은 작품들을 봐 왔다. 그 중에서 이 '동경 바빌론'을 가장 인상깊게 봤던 것 같다. 비록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친구로 부터 와장창 스포를 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점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하고 세기말적 공포가 지배하던 시기인 셈이다. 비록 일본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 지독히도 닮아 있어서 "당신은 '동경'을 싫어하십니까?" 라는 문장을 "당신은 '서울'을 싫어하십니까?"라고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는 시기적인 것을 초월해서 이십여년이 훌쩍 넘어 최근 다시 보았을 때 조차 해당되는 명제였.. 2016. 7. 5. 로이터 사진전 :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 (예술의 전당) - 찰나는 영원으로 능소화 꽃송이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샌가 굵은 꽃송이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려나보다. 장마비가 퍼붓고 난 후 잠시 소강상태여서 인지 세상은 더없이 맑고 뜨거웠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지하철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모습은 이렇게 쨍한 날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그림같은 풍경이다. 왜 이런 풍경이 낯설고 그림같아진 걸까(...) 풍성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며 반짝거렸다. 잔잔한 강물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물을 밟고 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저 건너로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찍어 놓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보도사진이라는 거 참 매력적이다... 2016. 6. 27.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국립중앙박물관) - 마주 앉아 미소 짓다 오늘날까지 지상에 남아 전하는 삼국시대 금동불은 국보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30cm 미만의 소형이 대부분이다. ▷ 곽동석 中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이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자세의 상을 말합니다. 이러한자세는 출가 전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도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반가사유상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 특별전 리플렛 中 우리나라의 국보 78호 상과 83호 상, 일본의 주구사 상과 교토 고류사 상은 4대 반가사유상으로 불리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의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고류사 미륵반가사유상은 만들어진 소재의 차이만.. 2016. 5. 30. 그대 내내 어여쁘소서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이상 中 스멀스멀 습한 바람이 올라왔다. 방파제 둑길이 해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축축한 공기 너머로 등대의 사이렌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릴 줄 뻔히 알면서도 등대가 부부젤라를 불어재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먼 바다 배들의 불빛도 희미해졌다. 둑을 넘어간 낚시꾼들도 부랴부랴 집으로 갈 채비를 하며 잰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바쁜 걸음과 상관없이 안개는 느긋하게 다가 왔다. 등대 앞마당 등나무에 걸려 있는 빗을 보며 당신께서는 그 곳을 찾던 사람을 잘 따르던 길고양이를 추억했다. 길냥이는 등대 방문객들이 가져.. 2016. 5. 28.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 지는 걸까? 운명은 제 할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것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내 책장에 아주 드물게 초판 1쇄 녀석이 입주했다. 작가의 전작인 7년의 밤과 28을 흥미롭게 읽은 덕에 예판이라는 형식으로 판매된 책을 구매했던 것이다. 첫 장부터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거기에 바다비린내와 찬바람까지 겹쳐졌다. 전작에 비해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은 짧아지고 공간은 작아지고 시점은 단순해졌다. 일관되게 유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래서인지 꽤나 쉽게 책장이 넘어 갔다. 하지만 쫀쫀한 긴장감이 흘러 지루할 틈은 없었다. 드라마.. 2016. 5. 25. 헤드윅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 사랑의 기원에 대한 슬픈 노래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자리를 잡고 선 앞엔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깨끗한 가방을 무릎에 얹고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읽을 거리를 찾아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는 데 싫어도 통화 내용이 들리는 거다. 친구에게 인지 연인에게 인지 알 수 없지만 회사 후배의 잘못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차서 흘러 넘쳤다. 내가 먼저 내릴 때까지도 꽤 오랜 시간동안 입으로 불만을 차갑게 쏟아 냈다. 뜨거운 화가 차가운 얼음 밑에서 끓고 있는 듯 보였다. 우울 바이러스가 퍼진 것 처럼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머리 꼭대기에 닿을 지경이었다. 예쁘장하던 그 얼굴도 어두워 보였다. 내 마음도 따라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공기를 만드는 짜증 불만 바이러스.. 2016. 5. 24. 이전 1 2 3 4 5 ···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