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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헤드윅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 사랑의 기원에 대한 슬픈 노래

by 셈틀씨 2016. 5. 24.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자리를 잡고 선 앞엔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깨끗한 가방을 무릎에 얹고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읽을 거리를 찾아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는 데 싫어도 통화 내용이 들리는 거다. 친구에게 인지 연인에게 인지 알 수 없지만 회사 후배의 잘못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차서 흘러 넘쳤다. 내가 먼저 내릴 때까지도 꽤 오랜 시간동안 입으로 불만을 차갑게 쏟아 냈다. 뜨거운 화가 차가운 얼음 밑에서 끓고 있는 듯 보였다. 우울 바이러스가 퍼진 것 처럼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머리 꼭대기에 닿을 지경이었다. 예쁘장하던 그 얼굴도 어두워 보였다. 내 마음도 따라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공기를 만드는 짜증 불만 바이러스는 그 곳에만 있지 않았다. 일을 하는 공간이든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이든 늘 함께 했다. 내 속에도 있었다. 이런 답답하고 어두운 공기 탓이려나. 언론에서는 연일 미세먼지의 유해성을 떠들어 댔다. 더 이상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독히도 탁하고 무거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세상 먼지를 모두 집어 삼킬 듯 엄청난 돌풍과 함께 비가 내렸다. 바람과 비가 그친 후, 파란 하늘 아래 녹색 나뭇잎 사이로 쏟아 지는 햇살이 뜨겁고 또 포근했다. 녹색의 여린 잎이 사랑스러워 가는 걸음이 점점 늦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냥 웃으며 자신의 덕력을 뽐내는 녀석을 만나는 것이 좋다. 행복한 모습으로 떠들어 대는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전시회를 보러 방문한 코엑스에서 헤드윅 포토존을 발견했다. '이런 공연 볼 수 있음 좋겠다' 중얼거렸다. '봐! 보면 되지 뭐' 쿨하게 말했다. 그래, 보면 되는 거지 싶었다. 이렇게 예쁜 하늘을 마주하니 한동안 어둡게 짓누르던 투덜 바이러스로 인한 짜증섞인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까짓 생활비 좀 줄이면 되겄지.. 좀만 더 부지런 떨면 되겄지..

 

서울의 첫 기억이 대학로다. 눈뜨고 코베이는 곳이 서울이라더라는 무시무시한 얘기와 함께 선배가 걱정스레 쥐어 준 서울여행서를 품에 안고 기차를 탔었다. 도착한 서울역에서 처음 본 지하철이 신기해 두리번거리고 신나 했었다. 대학로로 달리는 지하철에 제때 오르지 못해 일행과 헤어져 당황하기도 했던 길이었다. 그 때의 어리바리 촌놈티는 두고두고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나름 빼입은 긴 재킷 옷이 제법 더웠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이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간만에 찾은 대학로는 활기찼다. 싱그러운 풍경 속 변함없이 쭈구리 모드인 내 모습에 첫 상경길의 어리바리한 모습이 겹쳐졌다. 사람이 변하기란 참 쉽지 않구나 싶어 쿡쿡 웃음이 났다.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공연관람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맨 모드라니. 별콩다방 뭐시기를 마시자는 게 아니잖아. 편의점 콜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젠장 (...)

 

사실 고민을 좀 했다. 헤드윅이라는 뮤지컬이 공연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지 알지 못한 채 제목만 들었고, 10여년 정도 무대에 세워 졌으니 꽤나 팬층이 두텁겠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알고 있는 건 헤드윅이 주인공의 이름이며, 존 카메론 미첼이 부른 "The Origin of Love"와 "Sugar Daddy" OST를 음원으로 몇 번들어본 게 다였다. 창작물을 감상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선수 학습을 통해서 그 디테일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사전정보를 차단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접하는 신비로움과 경외감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있을 터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두 번이상 볼 것이 아니라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따르기 마련일 것이다. 고민하다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느끼는 새로움에 대한 궁금함과 흥미로움을 따르기로 했다. (귀차니즘의 승리라는 것은 안비밀)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퇴폐미 다분한 모습으로 도도하게 무대에 올라 관객을 향해 선 헤드윅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독에 사는 한셀 슈미트라는 소년은 자유를 갈망해 사랑하는 루터와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한다. 결혼을 하기 위해 어머니의 이름을 받고 자신의 남성성을 버린다. 그 불법시술의 과정에서 1인치의 살덩이만 남게 된다. The Angry Inch! 헤드윅의 밴드이름이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리던 날 그녀는 루터에게서 버림 받는다. 그 후 일 하던 곳에서 그 집 아들 토미를 만나 음악을 하고 사랑도 한다. 그녀의 모습을 두려워 한 토미로부터 다시 버림받는 헤드윅. 토미는 그녀의 음악을 가지고 승승장구 하게 된다. 그를 쫓아 그의 공연장 옆에서 공연을 하는 그녀. '이봐, 헤드윅. 당신 옆엔 당신이 늘 구박하는 이츠학이 있잖아' 생각 하는데 결국 그도 놓아 주고 만다.

 

가련한 여인이여. 거만하고 날선 고양이 같이 바짝 털을 곤두세우고 토미의 공연장 옆에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The Origin of Love"가 확실한 듯 싶었다. 애니메이션과 함께 흐르는 한국어 노래는 동화같이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그건 그녀에 대한 사랑스러움이기도 했다. 이 곡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어 가사로 되어 있는 넘버들을 찾아 들어 봐야지 싶었다.

 

 

락뮤지컬이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며 '락은 죽지 않아'를 외치는 듯한 경쾌함이 좋았다. 왜 소극장이어야 하는지 알겠다. 2층 관객을 위한 장치도 마련했고, 변언니 - 옆 관객들이 그리 부르더이다 - 도 2층에 대한 배려를 꽤나 했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뭐 관객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공연들이 다 그러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섯손가락을 펴고 한 손을 더 써야할 만큼의 뮤지컬 공연 관람횟수를 가진 관객으로 이 극은 조금 더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 들이는 느낌이 강했다.

 

처절한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지껄이는 대사인지 애드립인지 모를 추임새도 흥미로웠다. 매 공연마다 매 캐스팅마다 달리 해석될 이 부분들이 사람들이 회전문이라는 걸 도는 이유인 듯 싶었다. 헤드윅이란 극도 잘 모를 뿐더러 다른 분이 연기하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변언니가 보여 주는 헤드윅이란 인물이 어떻다 평가하기 힘들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배우가 뮤지컬을 하는 것에 선입견이 있었던 건지 예상외의 노래실력에 놀랐던 것도 같다. 그녀가 말하는 개그포인트와 내가 터지는 웃음의 지점이 미묘하게 어긋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삶의 처절함이 더 느껴졌었다. 자신의 반쪽을 찾아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의 행복을 진정 바랐다.

 

나 있을 때 무너져주지...

 

쪽팔리게도 눈물이 날 뻔했다. 심장이 툭 무너졌다. 세 번인가 읊조렸던 것 같은데 꽤나 강렬했다. 내 무의식에 그런 후회의 순간이 있었던 것 마냥, 두고 두고 생각이 날 것 같았다. 토마토를 꺼내 던지던 그 아픈 행위보다도 낮은 목소리로 흘리던 말이 심장을 세게 때렸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듣고 계셨던 어느 트로트 음악이 생각났다. 음은 꽤나 경쾌했으나 그 가사가 너무 쓸쓸해서 눈물이 날 만큼 마음이 아팠었다. 그 노래도 가사도 잊은 지 오래지만 따라 흥얼거리던 당신의 노쇠한 목소리와 쓸쓸한 느낌이 아직도 심장을 우울하게 만들곤 한다. 삶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하는 회한이 이런 걸까. 

 

이츠학.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 코러스 음악을 담당하며 헤드윅에게 끊이 없이 갈굼 당하던 그. 

사!랑!해!요! 탁누님!! 이 귀요미를 어쩌면 좋으랴. 공연내내 누님을 보고자 했으나 앞에 앉은 관객 분이 워낙 몸을 앞뒤좌우로 흔드시는 바람에 무대가 계속 가려져 안타까웠다. 토미에 대한 빡침이 종국엔 앞 관객을 향할 뻔 하기도.. (잘 참았어. 불끈!)

 

기립해서 함께 노래하고 즐기는 게 마지막 부분인가 본 데 어쩐지 심하게 여운이 남아서 일어 날 수 없었다. 극장 밖은 낮동안 달구어진 땅이 식어 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삼삼오오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하며 빠르게 흩어져 가는 무리들이 있었고 밤은 깊어갔다. 때론 낮선 이들의 인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리멸렬한 마음상태를 되돌아 보는 데 꽤나 유용한 이유다.

 

헤드윅, 그녀의 인생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부디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