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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단상

그대 내내 어여쁘소서

by 셈틀씨 2016. 5. 28.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이상 <이런 시> 中

 

 

스멀스멀 습한 바람이 올라왔다. 방파제 둑길이 해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축축한 공기 너머로 등대의 사이렌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릴 줄 뻔히 알면서도 등대가 부부젤라를 불어재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먼 바다 배들의 불빛도 희미해졌다. 둑을 넘어간 낚시꾼들도 부랴부랴 집으로 갈 채비를 하며 잰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바쁜 걸음과 상관없이 안개는 느긋하게 다가 왔다.

 

등대 앞마당 등나무에 걸려 있는 빗을 보며 당신께서는 그 곳을 찾던 사람을 잘 따르던 길고양이를 추억했다. 길냥이는 등대 방문객들이 가져다 주는 먹이를 먹었고, 그들이 빗겨주는 빗질을 즐겼다. 지금은 더 이상 찾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거라 생각하시는 듯 했다. 어제 핀 꽃이 져도 서운한 게 사람 맘일진데 정을 준 생명이 보이지 않으니 그 맘이 어떠랴 싶었다. 어둠이 내리고 안개가 짙어졌다. 우리도 슬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렇게 서러운 안개는 추억을 휘감고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