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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동경 바빌론 (CLAMP, 대원씨아이) - 당신은 이 도시를 싫어하십니까?

by 셈틀씨 2016. 7. 5.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짐을 싼 후, 뜯지 않은 박스 저 밑바닥에서 고요히 잠자고 있던 녀석이었다. 클램프라는 작기집단의 처녀작인 <성전> 부터해서 꽤 많은 작품들을 봐 왔다. 그 중에서 이 '동경 바빌론'을 가장 인상깊게 봤던 것 같다. 비록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친구로 부터 와장창 스포를 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점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하고 세기말적 공포가 지배하던 시기인 셈이다. 비록 일본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 지독히도 닮아 있어서 "당신은 '동경'을 싫어하십니까?" 라는 문장을 "당신은 '서울'을 싫어하십니까?"라고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는 시기적인 것을 초월해서 이십여년이 훌쩍 넘어 최근 다시 보았을 때 조차 해당되는 명제였다.

 

하늘이 무너질 듯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이야기들을 들여다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X>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관계보다 사회전반의 문제를 건들여 주는 초중반의 에피소드들에 마음이 갔다. 각 에피에는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오해와 파멸의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멸망을 향해가는 도시가 만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곳곳에서는 자연재해와 테러에 관한 소식들이 들린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도 지나치게 자주 들린다. 누군가를 저주하는 생각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고령화 사회속에서 노인들을 무시하고 돈과 권력이 우위인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여성들, 아이들 그리고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로 대변되는 약자는 설 곳이 없다. 이 희망을 잃어 버린 세계가 멸망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누가 과연 말할 수 있는가?

 

그래도 이 비가 그치고 찬란한 태양이 뜨기를 기다리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