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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단상

꽃무릇으로 붉게 물든 아침을 맞으며

by 셈틀씨 2014. 9. 26.

 

어느 날 마당 한 구석에 저승화가 피었다. 

묘지 부근에 피기 때문에 '저승화'라고 불린다.

저승화는 3배체로 씨를 맺지 않는다.

씨를 맺지 않는 저승화가 어떻게 늘어나는지는 의문이다.

 

▷ 이마 이치코 <백귀야행> 中

 

 

 

전 날 늦게까지 딴 짓하고 주말이라 느긋하게 늦잠을 좀 즐기려고 했겄만 그 날은 아침부터 전화기가 드르럭 거렸다. 어머니가 신나서 보내준 꽃무릇 사진 덕에 놈도 덩달아 신이 나서 온몸을 흔들어 재낀 덕분이다. 재작년인가 옆 집에서 한 삽 분양 받아 오시더니 드디어 꽃이 피었나 보다. 붉은 색의 꽃 때문인지 날 좀 보소 하던 전화기가 한껏 상기된 듯 보였다. 대문 옆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없는 듯 하던 곳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는데 어머니는 나름 그곳을 엄청 공들이고 계셨던 거다. 밖을 나서서도 당연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당신 손에서 피어 더 귀하게 여겨졌을 것이고, 다른 이와 함께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꽃무릇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 본 건 <백귀야행>을 통해서 였다. 리쓰네 집 앞마당에 저승화가 피었고, 송이송이에 깃든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영혼을 성불시켜주는 에피소드였었다. 그 때 저승화라는 꽃의 정체가 궁금해서 검색질이란 걸 했었다. 꽃무릇, 상사화, 피안화, 이별초, 석산등 많은 이름이 함께 보여 도대체 이게 뭔가 싶기도 했었던(...) 후에 도서관에서 본 야생화 도감에 의하면 꽃무릇과 상사화는 엄연히 다른 꽃이었다. 잎이 지고 말간 땅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는 상사화는 8~9월에 핀다. 반면 꽃 진 자리에 잎이 돋는 꽃무릇은 9~10월 늦여름, 초가을에 그 붉은 꽃을 피운다. 열매를 맺지 않는 건 같지만 말이다. 생각컨대 <백귀야행>에서 보았던 꽃은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계절에 피는 상사화였던 것 같다.

 

동백꽃이 한창이던 때 선운사를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푸른 잎으로 가득했던 곳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 3대 꽃무릇 군락지중 하나였던 곳이다. 지금쯤 온 산을 태울 듯 붉게 불들이고 있을 터다. 언젠가는 한 번 꼭 모시고 다녀 와야지.. 한 몸에 나서도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붙여진 상사화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당신께서는 꽃무릇보다는 상사화로 부르는 걸 좋아하신다.

 

'당신이 그리 부르신다면 그 녀석에게는 그게 맞는 이름인게지요. ^^'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좀 더 붉게 마당이 물들면 나도 한 삽 분양해 달라 했다. 아마도 아주 기쁘게 한 화분 만들어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