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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단상

그날이 되면 내가 기억해 줄게.

by 셈틀씨 2014. 10. 28.

 

치매 환자는 여러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다른 일을 하면 십중팔구 태운다. 빨래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는 정도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여자의 경우, 가장 먼저 못하게 되는 것은 요리라 했다. 요리는 의외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계획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미래 기억'은 앞으로 할 일을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치매 환자가 가장 빨리 잊어버리는 게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식사하시고 30분 후에 약을 드세요"같은 말을 기억하는 게 바로 미래 기억이란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 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 수밖에.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中

 

 

 

「치매 초기라더라.」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좋을지 할 말을 찾지 못해서 한동안 머뭇거렸다.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그래...」어설픈 위로나 동정의 언어 따위는 쓰고 싶지 않았다. 기억은 때로 자신만의 의지를 지닌다. 사람에게서 기억이라는 걸 제외하면 뭐가 남는 걸까..?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아서 그냥 조용히 들어주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의 생이란 그리 길지 않아서 그사람이 자신의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기억해 주면 될 일이다. 또 내가 기억할 수 없게 된다면 기록하면 그 뿐이다. 그러면 된다... 그러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