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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7년의 밤 (정유정, 은행나무) - 사실과 진실, 방황하는 기억

by 셈틀씨 2016. 4. 27.

 

 

 

책을 읽는 내내 기시유스케의 검은집을 읽었을 때처럼 난 어둡고 축축하고 비릿한 곳에 있었다. 출퇴근 길 비릿한 물안개로 둘러싸인 도시를 돌아 다니느라 몇 번이나 내릴 곳을 지나칠 뻔 하기도 했다. 마을은 깊었고 서사는 흥미로웠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강렬한 첫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서원이 현수를 마지막으로 본 후 세상으로부터 떠밀려 버려진 7년의 이유가 거기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세 명의 남자와 한 소녀가 조우한 세령호. 과거에 미묘하게 어긋났던 각자의 균열들이 그 밤 시너지를 일으켜서 큰 비극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현수, 영제, 승환의 시점으로 쓰여진 글을 읽을 때 그 상황에 한 껏 감정이입을 해서는 각자의 순간마다 선택에 대한 문제를 같이 고민해야 했었다. 그 선택에 답답해하며 심장을 틀어쥔 채 책장을 넘긴 건 나 또한 더 옳은 일과 더 나은 일에 대한 선택의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상황을 점점 더 어둠으로 내몰았다.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까지도 선택들로 인해 끝까지 고통받아야 했던 것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 두 부정(父情)이 충돌하는 지점이 이 이야기의 갈등이 된다. 서원이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도록 그를 따라다녔던 잡지 속 살인마 이야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은 조금 달랐다. 복기하려 애쓰는 그 기억들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실과 진실과 기억의 균열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항상 느끼는 부분이고 짐이 된다. 균열의 위태로움과 호기심이 내가 이 소설속 그들의 삶을 끝까지 함께 내달릴 수 있게 한 힘이 되었다.

 

이야기는 야구선수, 잠수부, 의사 그 각각의 직업이 가진 상황을 상당히 생생하게 묘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동안 노력했을 그 사전 조사가 느껴져서 소설가에 대한 경외심이 다시 느껴지기도 했다. 때문에 실제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존재했던 정말 있었던 일처림 느껴졌다. 그래서 태어나 행복이란 걸 알지 못하고 가라 앉은 가여운 소녀의 영혼에 맘이 아팠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악착같이 향해갔던 어미가 안타까웠다.

 

한동안 비소설분야 책을 읽으며 책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더라며 친구에게 투덜댔었다. 하지만 그것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뇌가 아니라 몰입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뇌와 마음에 휴식이 필요한 바 폭포수 아래에서 도라도 닦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