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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단상40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윤동주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고작 우리같은 어른이 되거나 그래도 우리같은 어른이 된다. 2016. 5. 5.
먼지 많은 봄 날의 풍경 비가 뿌리고 도봉산의 웅대한 바위가 파란 하늘아래 조화롭게 서 있었던 걸 보며 감탄했던 게 불과 몇 일 전의 일이었다. 그 풍경이 아주 오랜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산 능선마저 구분되지 않을 만큼 미세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뒤덮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세상이 우울해지는 기분이 드는 굉장히 기괴한 느낌의 주말이었다. 때문에 '선비의 일상, 음악이 있는 풍경' 에서 보여주는 선비들의 거문고와 함께한 일상이 더욱 더 미묘하게 다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흐르는 음악소리와 고즈넉한 풍광을 상상해 봤다 소음이 많지 않았을 그 때에는 먼 곳의 음악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을테고 여린 녹색잎에 어울어진 색색의 봄 꽃들은 선명했을 터였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세상은 계속 떠들고 있.. 2016. 4. 25.
흥미로운 경험들을 즐기는 거야 그래, 물론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요령은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 거야. ▷ 中 친구녀석이 셀프인테리어를 하고 재료가 조금 남았다면서 박스 하나에 남은 도구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 주었다. 환기를 시켜야 하니 꼭 따뜻한 날 하라는 애정어린 충고와 함께 마스크도 챙겨 주는 센스를 발휘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나도 지저분한 욕조를 환골탈태 시켜볼 요량으로 코팅부터 한 번 해보자고 주말을 투자해 작업을 시작했다. 세제로 욕조를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 구석 구석 사포질을 해 연마를 하고, 그 후 욕조를 싸고 있는 실리콘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대체 뭘 믿고 일을 벌인 거냐 잠깐 후회도 했었지만 심기일전해서 마스킹테이프를 붙인 후 배합한 페이트를 롤러에 뭍혀 칠을 시작했다. 구석.. 2015. 4. 22.
당신이 없는 봄에도 꽃은 피었다 봄에는 밤벚꽃 여름에는 별 가을에는 만월 겨울에는 눈 그것만으로도 술은 충분히 맛있다 그래도 맛이 없다면 그 건 자기자신 어딘가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 와츠키 노부히로 中 수채화 물감으로 붓질하듯 흩날리는 꽃잎이 지독히 화사해서 심술이 났고, 봄바람은 짧아서 서럽다. 2015. 4. 9.
책들을 떠나 보내며 아직 봄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책장을 정리해야 해서 보지 않는 책들을 과감히 처분하자고 정말 가볍게 생각했었다. '이사갈래 책정리할래'라는 전자책광고를 보며 공감백배의 심정도 포함. 그런데 이게 웬 걸... 하루를 꼬박 소비하고도 책들이 정리가 안 되는 거였다. 여기저기 꽂혀 있고 흩어져 있는 내 책들... 뭐 하나 쉽게 버릴 수 없어서 멘 to the 붕! 책 한 권 한 권을 들어 찬찬히 훑어 보는데 각 책마다 묻어 있는 추억들이 떠올랐다. 신간 발매소식을 듣자마자 그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서 바로 집어 들었던 추억. 한정된 예산때문에 서점에서 오래 서성이며 고민해서 선택했던 책들. 작은 엽서에 인사말을 적어 선물해준 친구의 책들. 출퇴근길 소소한 즐거움을 주던 문고판 책과 주.. 2015. 1. 22.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 새벽 시장엘 가거나 지하철, 버스가 끊긴 시간 심야버스를 타거나 혹은 휴일 강의장에 발걸음을 하게 되면 말이지.. 세상엔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또 열심히 삶에 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느끼게 돼.. 열심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열심히 한다는 말이 모든 일의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과 낙엽들이 서서히 줄어 들고, 거리엔 벌써 연말 도시의 풍경으로 채워 지고 있어.. 그런 속에서 열심히 살아 가는 그런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면 좋겠다.. 2014.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