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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호빗 : 다섯 군대 전투 (The Hobbit: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 2014) - 긴 여정이었다

by 셈틀씨 2014. 12. 30.

 

 

간달프와 참나무 방패 소린이 이끄는 드워프들로 인해 시작된 빌보의 뜻밖의 여정은 13개월 동안의 모험을 뒤로하고 샤이아로 돌아 오면서 막을 내렸다. 그 여정은 프로도의 반지 원정대로 이어질테지만 나의 15년간 계속되던 중간계 여행은 여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인물스케치들이 바뀌면서 흘러 나온 <The last goodbye>를 들을 땐 완전한 안녕을 고하는 것 같아 먹먹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헛헛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영화를 본다는 것, 특히 누군가와 함께 극장에서 보는 것은 영화외적인 것도 그 영화에 대한 느낌을 상당부분 좌우하게 마련이다. 작년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가 개봉하게 되면 그 주말에 바로 IMAX 3D hfr로 보아 주리라 했었는데 배급사와 극장의 밀당때문에 애초에 세웠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맥스 좌석을 아쉬워하며 올해는 기필코 기술의 호사를 경험해 보자 했었다. 그리고 올해 친구와 함께한 나의 호빗은 빛났다. 요정왕님의 상처받은 표정에 안타까워하며 보던 녀석이 소린과 빌보의 마지막 인사에서 폭풍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며 주섬주섬 꺼내던 휴지도 기억에 남을 것이고, 영화가 끝나고 연말의 들뜬 풍경앞에서 빠심충만해 읊어대는 배우들의 뒷 이야기 또한 추억이 될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웹 여기저기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 영화.. 원작파괴범이라고 대차게 까이고 있는 중(...) 결코 영화화할 수 없을 거라던 <반지의 제왕>을 멋지게 성공시킨 피터잭슨이었는데, 안습이어라. 사실 톨키니스트라 불리는 원작팬들이라면 충분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원작이 영상화가 되면서 내가 감동받은 부분이나 애정하는 캐릭터가 망가지는 걸 목도하게 되면 또한 당연히 개빡칠테니 말이다.

 

 

<호빗> 원작은 물론이고, 그 평가에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지라 영화를 보기 전 사전정보는 전혀 없었다. 다만 알고 있었던 건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레골라스와 스란두일을 우리나라 아침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집착쩌는 재벌2세와 막장 시어머니에 빙의하게 만든 타우리엘이 오리지널 캐릭터라는 것 정도가 다였다. - 중이병 걸린 아들시키 때문에 맘고생하시는 두일이 형님에 감정 이입해서 보던 그는 '나의 레골라스를 돌려줘~'라며 슬퍼했다고 한다(...) - 뿐만 아니라 킬리와의 로맨스는 어찌 이리 오글거리던지.. 뭔가 '어른의 사정'이 많이 개입된 탓이려나 싶기도 했다. 소린은 주인공이니 그렇다치고 킬리는 드워프 주제에 우월한 비쥬얼을 보유한다 생각이 들었는데 - 피터는 얼빠?! - , 환영받지 못했던 럽라를 위함이었던건가.. 오리지널 캐릭터이기 때문에 조용히 사라져야 할 운명이니 아마도 <다섯 군대 전투>에서 유명을 달리하며 신파적 장면을 보여주지 않을까 추측케 했던 인물이기도 했었다. 원작을 알고 있던 사람들 또한 다른 방식이지만 신파적 결말을 예상했었나 보다. 원작의 결말을 알지 못했던 난 직계 혈통의 단절이 나름 충격이었다.

 

원작을 알지 못하고 본 덕분이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아줌마적 폭풍수다를 자랑하는 스마우그와 대치하던 바르드. 그가 이끄는 호수마을 사람들의 행보를 쫓으며, 황금에 눈이 멀어 탐욕스러워진 소린이 마침내 성장하는 것에 박수를 보냈고, 클라이막스인 군대들의 연합 전투장면에 환호했다. 시의 적절하게 등장해주시는 각 군대가 집결하고 엘프와 드워프군대가 간지나게 협공할 때와 갈색마법사 라다가스트가 독수리군단, 베오른과 함께 등장하실 땐.. 아오~! 내 심장. 전율이 일 지경. 크라켄을 앞세우며 등장한 아조그의 오크군단과 와르그군단도 어마무시한 스케일을 자랑해 주시니,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오글거리던 로맨스를 시전하던 것 따윈 다 잊어주겠어. 요정왕 스란두일이 엘프전사들의 죽음을 쓸쓸히 바라보는 장면이 있긴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사실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깊이있게 다루는 게 목적은 아니었던지라, 우리편 착한 편 너네편 나쁜 편의 이분법 적으로 전투장면을 볼 수 있게 만든 동화적 설정 때문에 그냥 화려한 전쟁씬을 더 황홀해 하며 감상할 수 있었을 터였다.

 

여전히 아름다우신 갈라드리엘도 출연해 주셨다. 엘론드와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를 뽐내는 사루만과 함께.. 아홉반지를 낀 반지악령을 상대할 대 이 세계의 진정한 끝판왕이 아니더냐 싶은 모습으로 말이다. - 흑화된 모습 개 멋있었음 >< - 이 악령들은 <반지의 제왕> 나즈굴의 복선이 되기도 하니 그 복선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엘프부자가 언급하는 스트라이더도 반가웠고 말이다.

 

 

잘있게 좀도둑 선생. 자네의 책들, 자네의 안락의자로 돌아가. 나무를 심고, 자라는 것을 봐. 사람들이 금보다 고향을 더 귀하게 여겼으면,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웠을 거야

 

민폐쩔던 젊은 드워프왕 소린은 종국엔 성장하고 빌보와의 우정을 확인했다. 일렬로 서서 빌보를 배웅하던 드워프들의 모습에서는 <반지의 전쟁>에서 김리가 드워프의 무덤을 발견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어찌나 찡하던지. 철산왕 다인의 드워프 왕국이 보고 싶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빌보는 여전히 호빗다웠다. 샤이아의 초록초록한 풍경도 역시 눈을 정화시켜 주었지만, 러닝타임의 압박 때문인지 다른 인물들의 후의 행보는 영화에서 보여 주지 않고 갑자기 툭 끝난 느낌이 들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이 때문에라도 DVD 확장판을 기다리며 중간계 여행의 끝을 조금 더 미뤄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