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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인문학 정원 ⑦ 숙부의 과거와 조카의 미래 - 토요일 오후의 즐거운 인문학 산책

by 셈틀씨 2014. 9. 29.

 

바람이 선선해서 꽤나 기분좋은 오후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득 메운 작은 아이들의 발걸음도 경쾌했다. 찾을 때마다 늘 고즈넉하면서도 활기찬 느낌이 좋은 곳이다. 145년만에 귀환한 외규장각 의궤를 만나기 위해 친구녀석과 이 곳을 찾은 게 늦 더위가 한창이었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때가 생각나는 맑은 가을에 박물관을 찾은 이유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토요일 오후, 인문학 정원>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회사분위기 우울하다 툴툴거리며 출근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찾은 강의는 올 초부터 진행해서 벌써 일곱번 째라고 했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文,史,哲 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를 연구하는 학문일 것이다.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지고 있어, 나도 한 마디정도 섞어 보고 싶어 찾게 되었다.

 

 

두 시가 되려면 제법 한참의 시간이 남았건만 많은 사람들이 교재를 받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되는 무료강의라 그런지 입구에서 배포하는 교재에는 좌석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만석이 되면 통로나 TV앞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면면은 남녀노소 다양했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5~60대 청중이 압도적이었다. 세월의 여유로움을 간직한 그들의 지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해 보였더랬다. 의미없이 흘려 보낸 나의 주말에 드는 자괴감을 어쩔(...)

 

 

인문학 정원의 일곱번 째 꼭지는 '숙부의 과거와 조카의 미래 - 광해군과 인조' 였다. 요즘 [역사저널 그날]에서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주제라 더 기대하며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학과 교수님이 풀어내 들려 준 이야기는 일단 굉장히 재미있었다. - 자료도 보지 않고 두 시간동안 막힘없이 말한 점이 가장 놀라웠던 부분 - 광해군과 인조, 이 두 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선조와 임진왜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강의는 1592년 임진란에서 시작했다. 역시 전쟁이란 소재는 마음이 아팠다. 소설, 영화 혹은 드라마라는 픽션에서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허구의 것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서는 각 사료에 있는 내용을 언급해 주며,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도 현재 우리가 밟고 있는 곳으로 치환해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특히 광해군의 정치적 행보와 군신관계는 그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 만약이란 안경을 슬며시 써보고 싶은 왕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실패한 두 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를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만 듣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 때의 국제정세를 현재에 비추어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 주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임이라. 과거를 거울 삼아 우리의 미래를 찾는 것이 인문학의 목적일테니까.

 

혹 무료한 토요일을 맞게 된다면, 인문학 정원에서 즐거운 산책을 해봄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