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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예담) -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by 셈틀씨 2014. 9. 20.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몇 년전 서점 나들이를 갈 때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을 표지로 하고 있던 이 책 광고 포스터를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표지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느꼈던 재기발랄함이 기억나서 유쾌한 이야기를 어쩌면 기대했었던 것 같아요.

 

소설은 80년대 중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작중 화자인 '나'는 백화점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요한'과 '못생긴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자신을 떠났던 그녀를 만나러 가는데...

 

 

당연하겠지만 책은 굉장히 잘 읽히고 문단의 가독성은 뛰어 났습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그들이 풀어가는 사랑이야기나 후반 두어번의 반전에 사실 큰 감흥을 느낄 순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깊이가 얕다거나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탓일 터였을 수도 있겠죠. 이야기는 분명 그들의 성장과 숭고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제가 읽은 이야기는 우리사회에서 아름다움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문제로 먼저 보여서 꽤나 뒷맛이 씁쓸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인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쁘지 않은 주인공을 보려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그럴지도 라고 동의하는 자신이 보였음이겠죠.

 

약간 예뻐진 그녀는 또 얼마 있다가 다시 옵니다.

이번에는 전보다 돈을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뻐진 덕분에 수입이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다시 터널로 들어갑니다. 나온 그녀는 전보다 훨씬...

 

책을 읽으면서 <환야>의 이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탐하는 건 비단 여자만의 문제도 또 현재의 문제도 아닙니다. 가까이 매스미디어만 보더라도 동일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을 볼 때, 우리들은 더 예쁜 사람, 더 날씬한 사람, 더 키가 큰 사람에게 열광하죠. 동서고금의 것들이 아름답다라는 것만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조금 더 나은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흔한 예로 남자들에게 소개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주된 관심사는 "예쁘냐?" 라고 하죠. 개그의 소재로도 쓰이는 이야기입니다. 또 알바를 구하는 구인광고에는 "용모단정"이란 말이 의례 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조금 더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살을 빼고, 미용에 비용을 쏟아 붓는 게 현실입니다.

 

현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판타지를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잘생긴 '내'가 예쁘지 않은 여자 - 외모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충분히 아름다운 그녀 - 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죠. 그 부분이 지나치게 판타지로 읽혀서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까칠까칠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정독하게 되었을 땐 조금은 더 따뜻하게 이야기로 받아 들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