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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곰팅이/감상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 님은 기어이 강을 건너시네

by 셈틀씨 2015. 4. 8.

 

 

 

딸 부잣집 소녀는 14살의 나이에 아재를 만났다. 청년은 6년을 죽을 만큼 일하고 어린 신부를 맞았다. 그들은 7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을 함께 지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었고, 안늙은이와 늙은이가 되었다.

 

처음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일상을 만난 건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을 통해서였다. 사람의 생을 계절로 비유해 봤을 때 겨울도 한참 늦겨울에 이르렀을 두 사람이겠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빛깔 고운 꽃이 지천으로 피는 봄인 듯 보였다. 로맨티스트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엄나무를 마당에 옮겨 심고, 노래를 불러 주고, 꽃을 따다 주었다. 소녀감성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짓궂은 장난에 삐졌다가 할아버지가 내미는 꽃한송이에 웃고 말았다. 낙엽도 던지고, 눈도 던졌다. 할아버지가 나무하러 산에 가면 할머니도 따라 가서 밤을 주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면서 고되고 서늘한 젊은 날을 함께 했고, 지금은 무거운 세월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모습으로 다시 어린 부부마냥 살아 가고 있었다. TV를 통해 본 그들의 모습은 참 따스했다. 세월이 덧입혀진 인자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꽤 흥행한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극장에서 쳐울기 싫어서 VOD가 나오기를 기다렸가다 집에서 조용히 감상했다.

화면 속의 그들은 여전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었고, 고운 색 커플한복을 맞춰 입고 손을 잡았다. 가을에 시작해서 다음 해 겨울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느리게 또 조용하게 담아냈다. TV와 다른 느낌으로 영화에서 여백이 길게 느껴진 건 단지 나레이션이 없어서 만은 아니었다. 꼬마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 심장을 스산하게 한 때문일 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옷을 태우며 먼저 갈 님을 걱정했다. 할아버지를 보내고 아이의 내복을 태우면서 오래 전 떠나 보낸 아이를 부탁했다. 눈 덮힌 무덤가에서 할머니는 오래도록 울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사는 것만큼 긴 세월을 함께 한 님을 보내는 할머니의 인사였다. 이별이란 아무리 준비해도 슬프다. 할머니처럼 이별의 때가 오면 마음껏 슬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네들처럼 나이가 들면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눈물젖은 수건이나 빨아야 겠다.